한국은 후발 이민국가이다.
동질적인 민족 집단을 이루어 온 나라이고 단일민족 관념이 강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제이주의 영향은 단일민족 관념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에게는 민족의식이 강하다.
민족의 구성원이 민족 정체성과 민족국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생기는 신념체계가 민족주의이다.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단일민족국가 관념이 독립을 추구하면서 혈통의 종족집단을 강조하며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독일에 광부, 간호사 등을 보내고 중동지역에 건설노동자를 보낸 경험이 있는 이민 송출국이었다.
그러나 19880년 후반부터는 국제이주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하는 이민 수용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요인으로는 저숙련 분야의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이주 노동자의 유입, 재중동포 등 재외동포의 노동시장 유입 그리고 국제결혼으로 인한 정주형 이민자 집단의 증가이다.
이렇게 되면서 단일민족국가 관념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민족 개념은 혈통이라고 볼 수 있고 한국인들의 관념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종족적 타자가 부재했었다. 비슷한 얼굴, 언어를 함께쓰며 똘똘 뭉칠 수 있었고 소수자의 성장을 막아왔다.
국제이주가 활발해진 지금은 노란 머리의 한국인, 검은 피부의 한국인이 있을 수도 있는 시대이다.
세계화와 민주화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세계화로부터 파생된 국제이주와 국제인권규범의 영향력이 단일민족국가 관념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고, 순혈과 혼혈이라는 단어는 인종적 우열주의를 퍼뜨린다고 우려했다.
1887년 이후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이주민, 혼혈인, 재중동포 등 타자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증진시켰다.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적 이행과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이 강화되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하며 그들을 존중하고자 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화, 민주화는 한국민족주의 관념에 도전이 된 것이다.
이주민을 처음에는 타나로 인식하다 후에는 같은 민족으로 받아들이되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위계적 민족성이 한국에 내제된 분위기이다.
국제이주 연구에서 한국을 주목한다. 단일민족성이 강한 나라에서 국제이주가 낳을 수 있는 사회적 갈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합을 이해하기에 좋은 사레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빠르게 진행되는 국제이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것이지 주목되었다.
1987년 중국동포들이 보따리상이라 불리며 입국하기 시작했고 1988년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때는 관광 또는 단기 비자로 입국하여 대부분 서류 미비 상태로 활동했다.
이 후 비자법이 생기면서 이주민은 250만명 이상이 되었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전까지는 주한미국과 화교가 대부분의 외국인 집단이었다.
주한미군은 캠프에서 생활했기에 사회에서 부딪힐 일은 크게 없었다.
화교는 중국 국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다. 중국은 1950년까지 한국의 수출, 수입에 주도적인 혈할을 했지만 사회적인 차별과 그들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로 인해 감소했다.
1950년 항구에서 외국인이 창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제지하는 법이 재정되었고 1962년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가 금지 되고 1970년대 초반 도심 재개발을 명분으로 도심에 위치하고 있던 차이나타운이 해체되었다.
화교의 경제활동이 크게 제재가 되었던 것이다.
2007년 방문취업제 도입 이후 재중 동포의 비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구소련지역 동포를 대상으로 하여 5년간 유효한 복수 사증을 발급하고 한번 입국하여 최대 3년간 체류할 수 있으며, 32개 업종에서 취업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재외동포법에서 소외되었던 재중동포를 배려한 것이다.
한국의 중소제조업 부분에 노동력이 부족했다. 대기업들이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동집약적인 생산라인들을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기 시작하면서 저숙련 중소 제조업 노동력 수요가 증가했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로 인한 건설노동자 수요 증가로 저숙련 제조업 종사자가 건설업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4년제 대학 졸업자인 고학력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은 저숙련 제조업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일력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방문취업제로 입국하면서 일손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 재중동포의 노동력이 제공되었다.
현재는 재중동포들이 한국말도 되고 기술력도 있어서 건설업 및 서비스업에서 내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